오늘의 판례 읽기판례 평석 · 생활 법률

판례 평석

피의사실 공표와 신원보도 — 대법원 96다17257 판결

2026년 10월 19일

이 판결은 이혼소송 중 재산을 차지하려 했다는 범죄혐의가 수사기관과 언론을 통해 공표된 뒤 제기된 손해배상 사건이다. 이른바 ‘이혼 전 재산 빼돌림’ 자체의 재산분할상 효력을 다룬 판례가 아니라, 이혼과 재산을 둘러싼 확인되지 않은 혐의를 공표·보도할 때 발생하는 명예침해의 책임을 다룬다.

Ⅰ. 사안의 개요

  • 원고는 1975년 혼인신고를 마쳤고, 1990년 무렵 배우자와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원고가 이혼재판이 끝나기 전에 배우자를 청부살해하여 재산을 상속받거나, 배우자를 협박하여 많은 위자료를 받아내려 했다는 내용의 고소가 경찰에 접수되었다.

  • 경찰은 사건을 살인예비음모 및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사건으로 보고 원고 등을 입건하였다. 원고와 함께 현장에 있었다고 지목된 사람들은 혐의를 모두 부인하였으나, 경찰은 고소인들의 진술을 근거로 혐의가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구속영장 신청을 준비하였다.

  • 경찰의 형사계장은 구속영장 신청 전 출입기자들에게 ‘굵직한 사건을 해결하였다’며 취재를 요청하였다. 수사담당 경찰관들은 원고 등에 대한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설명하고, 기자들이 관련 수사기록을 자유롭게 열람하도록 하였다.

  • 신문사들은 이를 토대로 사회면에 관련 기사를 보도하였다. 방송사는 원고가 청부폭력배에게 배우자를 혼내 주고 위자료 5억 원을 받아 주면 1억 원을 주겠다고 제의하였다는 취지의 내용을 원고의 얼굴과 함께 방송하였다.

  • 원고 등은 구속된 뒤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로 기소되었으나, 형사법원은 고소인의 진술이 상호 모순되고 일관성이 없어 믿기 어렵고 달리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무죄판결은 1992년 대법원에서 확정되었고, 고소인은 뒤에 원고가 형사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고소를 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 원고들은 대한민국과 보도에 관여한 언론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제공된 판결 자료에는 민사 제1심의 법원과 구체적 결론이 나타나 있지 않으며, 서울고등법원은 1996. 2. 27. 원심판결을 선고하였다. 피고들이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하였다.

Ⅱ. 쟁점

(1) 수사기관이 공소제기 전에 피의사실을 언론에 공표한 경우, 명예훼손의 위법성이 조각되기 위한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2) 언론이 공적 인물이 아닌 범죄혐의자의 신원이나 초상을 공개한 보도가 범죄사건 보도와 동일하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Ⅲ. 판결 요지

대법원 1998. 7. 14. 선고 96다17257 판결은 피고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상고비용을 피고들이 부담하도록 하였다.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명예·사생활 보호가 충돌할 때 어느 한쪽을 추상적으로 우선시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정에 따라 각 법익이 실현하는 가치를 형량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여론의 자유로운 형성과 전달에 의하여 다수의견을 집약시켜 민주적 정치질서를 생성·유지시켜 나가는 것이므로 표현의 자유, 특히 공익사항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의 권리로서 최대한 보장을 받아야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 등 사적 법익도 보호되어야 할 것이므로, 인격권으로서의 개인의 명예의 보호와 표현의 자유의 보장이라는 두 법익이 충돌하였을 때 그 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구체적인 경우에 사회적인 여러 가지 이익을 비교하여 표현의 자유로 얻어지는 이익, 가치와 인격권의 보호에 의하여 달성되는 가치를 형량하여 그 규제의 폭과 방법을 정하여야 한다.

민사상 명예훼손도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고 오로지 공익을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졌으며 적시한 사실이 진실이라면 위법성이 조각된다. 진실성이 증명되지 않더라도 행위자가 이를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형법 제126조가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점, 헌법 제27조 제4항이 형사피고인에 대하여 무죄추정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점과 아울러 직접 수사를 담당한 수사기관이나 수사담당 공무원의 발표에 대하여는 국민들이 그 공표된 사실이 진실할 것으로 강하게 신뢰하리라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직접 수사를 담당한 수사기관이나 수사담당 공무원이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경우에는 공표하는 사실이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히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객관적이고 타당한 확증과 근거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러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에는 일반적인 명예훼손 사건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언론의 범죄사건 보도에 공공성이 인정될 수 있더라도, 공적 인물이 아닌 혐의자의 신원이나 얼굴을 공개하는 행위까지 당연히 공익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일반적으로 대중 매체의 범죄사건 보도는 범죄 행태를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사회적 규범이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위반하는 경우 그에 대한 법적 제재가 어떻게, 어떠한 내용으로 실현되는가를 알리고, 나아가 범죄의 사회문화적 여건을 밝히고 그에 대한 사회적 대책을 강구하는 등 여론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믿어지고, 따라서 대중 매체의 범죄사건 보도는 공공성이 있는 것으로 취급할 수 있을 것이나, 범죄 자체를 보도하기 위하여 반드시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의 신원을 명시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고, 범인이나 범죄혐의자에 관한 보도가 반드시 범죄 자체에 관한 보도와 같은 공공성을 가진다고 볼 수도 없다.

Ⅳ. 검토

(1) 첫 단계는 헌법상 법익의 형량이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 제21조에 근거하며 공익사항에 관한 여론 형성을 위해 폭넓게 보장되어야 하지만,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도 헌법 제10조 및 민법 제751조가 보호하는 인격적 법익이다. 법원은 표현의 내용, 공표 상대방의 범위, 표현 방법, 명예침해의 정도를 함께 비교하도록 하였다.

(2) 다음 단계는 민법 제750조와 제751조에 따른 불법행위의 위법성 판단이다.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실을 오로지 공익 목적으로 적시한 경우에도 진실성이 증명되거나, 최소한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공익성은 범죄와 관련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내용과 전파 범위, 표현 방식에 따라 판단된다.

(3) 수사기관에는 가중된 확인 의무가 요구된다. 형법 제126조가 공판청구 전 피의사실 공표를 범죄로 정하고 있고, 헌법 제27조 제4항은 무죄추정 원칙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수사기관의 발표를 높은 수준으로 신뢰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히 진실이라고 믿을 객관적이고 타당한 확증과 근거’가 없는 발표에는 상당한 이유를 인정하기 어렵다.

(4) 이 사건에서는 피의자들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었고, 수사의 핵심 근거였던 고소인의 진술은 뒤의 형사재판에서 모순되고 일관성이 없다고 판단되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구속영장 신청 전 기자들을 불러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설명하고 수사기록의 열람까지 허용하였다. 이러한 공표 시기와 방식은 피의사실 공표 및 무죄추정 원칙과 긴장관계에 놓인다.

(5) 언론보도의 공공성과 신원 공개의 공공성은 구별된다. 범죄의 행태와 법적 제재를 알리고 사회적 대책에 관한 여론을 형성하는 보도는 공익에 기여할 수 있지만, 그 목적을 위해 혐의자의 이름이나 얼굴을 반드시 공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상자가 공적 인물이 아니라면 신원·초상의 공개로 얻는 정보 가치와 개인이 입는 명예·사생활 침해를 별도로 비교해야 한다.

(6) 이 판결은 대법원 1988. 10. 11. 선고 85다카29 판결의 명예 보호와 표현의 자유 사이 이익형량 법리를 계승한다. 대법원 1995. 11. 10. 선고 94도1942 판결, 1996. 4. 12. 선고 94도3309 판결, 1996. 5. 28. 선고 94다33828 판결, 1996. 10. 11. 선고 95다36329 판결, 1996. 10. 25. 선고 95도1473 판결 및 1997. 4. 11. 선고 97도88 판결과는 공익성·진실성·상당한 이유에 관한 판단 구조로 이어진다.

(7) 수사기관 발표에 요구되는 엄격한 상당성 기준은 대법원 1993. 11. 26. 선고 93다18389 판결, 1996. 8. 20. 선고 94다29928 판결 및 1998. 5. 22. 선고 97다57689 판결의 법리와 연결된다. 이 기준은 수사기관의 발표가 지닌 권위와 파급력, 공소제기 전 피의자의 불안정한 지위를 함께 고려한 것이다.

Ⅴ. 이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이혼과 재산을 둘러싼 범죄혐의라도 수사기관이 일방의 진술만을 토대로 기소 전에 확정적 사실처럼 공표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확인하였다. 범죄사건 보도의 공공성이 사인의 신원이나 초상을 공개하는 행위에 곧바로 확장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하였다. 다만 위법성 여부는 사실의 내용, 확인 근거, 공표 시점과 범위, 신원 공개의 필요성 등 개별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Ⅵ. 참조조문 · 참조판례

  • 민법 제751조, 헌법 제10조, 제21조

  • 민법 제750조, 제751조, 형법 제307조, 제310조

  • 민법 제750조, 제751조, 헌법 제27조 제4항, 형법 제126조, 제307조, 제310조

  • 대법원 1988. 10. 11. 선고 85다카29 판결(공1988, 1392)

  • 대법원 1995. 11. 10. 선고 94도1942 판결(공1995하, 3961)

  • 대법원 1996. 4. 12. 선고 94도3309 판결(공1996상, 1627)

  • 대법원 1996. 5. 28. 선고 94다33828 판결(공1996하, 1973)

  • 대법원 1996. 10. 11. 선고 95다36329 판결(공1996하, 3297)

  • 대법원 1996. 10. 25. 선고 95도1473 판결(공1996하, 3491)

  • 대법원 1997. 4. 11. 선고 97도88 판결(공1997상, 1516)

  • 대법원 1993. 11. 26. 선고 93다18389 판결(공1994상, 194)

  • 대법원 1996. 8. 20. 선고 94다29928 판결(공1996하, 2776)

  • 대법원 1998. 5. 22. 선고 97다57689 판결(공1998하, 1712)

출처

  1. 대법원 1998. 7. 14. 선고 96다17257 판결 — 국가법령정보센터

이혼전재산재산빼돌림명예훼손피의사실공표신원공개이혼소송대법원판례